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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당신의 「아몬드」는 무엇인가? 오랜 동안 베스트셀러 선반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를 드디어 읽었다. 소설의 중반까지만 해도 이 작품이 그토록 오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와 근래 보기 드문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이유를 잘 알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를 넘어가면서 알 수 있었다. 「아몬드」의 줄거리를 단순한 편이다. '감정 표현 불능'이라는 정서적 장애를 가진 십대 소년이 사고로 엄마와 외할머니를 잃고 난 후 생전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십대 청소년의 정체성 혼란, 친구와의 갈등과 해결, 처음으로 경험하는 상실의 고통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숙과 같이 성장 소설의 클리셰를 담고 있으면서도 뻔하지 않은 전개와 단단한 캐릭터 구축으로 성공한 작품인 것 같다. 지문보다.. 더보기
김미경의 「리부트」에서 읽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 작년 7월 책이 처음 나오고 한창 유행을 했기에 책을 읽은지가 꽤 됐다. 김미경 강사는 예전에 TV나 유투브에서 워낙 많이 접했지만 그녀가 쓴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인데, 사실 별로 기대 안했던 것에 비해서 굉장히 얻은 것이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바뀌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방향 제시가 인상 깊기도 했지만, 소위 말빨 좋은 사람의 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던 탓도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인 줄 모르고 그냥 말만 좀 잘 하는 사람인 줄 알았던 게 송구스러울 정도였다. 강의하는 그 짧은 시간을 그 정도로 위트있고 맥락있게 엮는 능력은 일단 속이 꽉 들어차야 나올 수 있다는 것.. 더보기
버지니아 울프의 환생,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넷플릭스 의 원작자로서였다. 드라마를 재밌게 보긴 했지만 굳이 원작을 찾아보고 싶진 않았고, 대신 많이 팔린 「시선으로부터」를 리뷰도 보지 않고 덜컥 주문해버렸다. 처럼 귀엽고 신선한 발상을 할 수 있는 작가의 많이 팔린 책이라면 분명히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시선으로부터」는 관악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 가장 좋아했던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끊임없이 환기시켰다.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들, 그 목소리들이 균열을 비집고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방식, 제국주의와 가해자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소재, 비선형적인 시간관, 가스라이팅을 당한 여자들, 그럼에도 자기 길을 간 여자들의 불굴의 정신력은 버지니아 울프가 8.. 더보기
짐 로저스가 그리는 「돈의 미래」는?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는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짐 로저스의 최신작이다.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 펀드를 설립해 4200% 수익률의 전설을 남기고 서른일곱 이른 나이에 은퇴한 후에 세계 각지를 다니며 모험 투자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자녀 교육 때문에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는데, 얼마전 슈카 유투브 채널에 짐 로저스 인터뷰가 올라와서 그의 싱가포르 집도 구경할 수 있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에서 전설적인 투자가의 위기론에 설득 당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너무 쉽고 평이한 내용이라서 굳이 사서 보지 않고 서점에 서서 읽어도 두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위대한 투자가의 인사이트를 부정하는 .. 더보기
경알못 밀레니얼 세대라면 「밀레니얼 이코노미」 가장 좋아하는 두 명의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종훈이 쓴 「밀레니얼 이코노미」를 다 읽었다. 주식을 해야 한다는데, 친구는 영끌해서 집을 샀다는데 아무리 유투브를 틀어놔도 무슨 얘기인 줄 모르겠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밀레니얼 세대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두 이코노미스트는 밀레니얼 세대가 직면한 경제 현실을 관련된 통계자료와 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각도로 보여준다. 부모보다 가난하게 된 최초의 세대, 숨만 쉬고 월급을 다 모아도 평생 서울에 집 장만하기에는 진작부터 그르친 세대, 조부모와 부모세대를 머리에 이고 살아도 정작 내 연금은 챙길 수 있을지 없을지 아무도 모르는 세대. 모두 밀레니얼 세대의 동의어이다. 이 책에서도 같은 맥락의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비관.. 더보기
캄캄한 겨울밤에 읽는 「일곱 해의 마지막」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나온 장편, 김연수 작가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어젯밤에 첫 20페이지 정도를 읽고 잠들었다가 오늘 오후부터 저녁 늦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됐다. 캄캄한 겨울밤을 연상하게 하는 이 소설을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고 이끌어가고 끝냈을지 상상해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겨울밤, 아무도 없이 혼자 숲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을까. 그런 고요와 고독 속에 겸허히 침잠해 들어갔을 작가의 용기와 노고에 독자는 마음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김연수 작가도 이렇게 먹먹한 독자의 마음으로 시인 백석의 삶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런 용기를 내고, 그런 고독을 감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 더보기
인류가 탄 배는 어디로 항해하고 있는가, 「사피엔스」 처음 출간됐던 5년 전 이후로 베스트셀러 선반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었다. 일단 두께에서 거부감이 들고, '이런 류의 역사서는 나와 안 맞아, '라고 생각해서 무심히 제쳐놓을 수 있을 법도 하지만, 처음 읽었을 때도 그렇고 두 번째인 이번에도 책장은 쉽게 잘 넘어갔다. 「사피엔스」는 대단히 사색적이고 난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직관적이고 간결하다. 유명하다는 역사서나 과학·인문 서적을 읽다 보면, 마치 본인이 굉장히 비범하고 학식이 높아서 허접한 학부생의 수준으로 낮춰서는 도저히 설명을 못해주는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는데, 「사피엔스」를 읽으면서는 그런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비상한 머리로 오랜 기간 사색하고.. 더보기
김금희 작가가 독자의 마음을 찬찬히 보듬어주는 소설, 「경애의 마음」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부터 좋아했던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을 출간된 지 2년이나 지나서야 읽게 됐다. 「너무 한낮의 연애」를 재밌게 읽어서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작품인 「너의 도큐먼트」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장편이 나오면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외국인 근로자로 해외에 살다보니 늦어지게 됐다. 「경애의 마음」은 우리 주변에서 본 것 같은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공상수라는 남자와 박경애라는 여자 두 사람이다. 연애소설이라면 연애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장르로 한정짓기에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다. 상수와 경애는 모두 30대 후반으로 '반도미싱'이라는 제조업체에서 '팀장대리'와 '주임'으로 근무하는 직장 동료다. 덩치값을 못하고 늘 허둥지둥에 긴장의 공백을 주저리주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