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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문학

김금희 작가가 독자의 마음을 찬찬히 보듬어주는 소설, 「경애의 마음」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부터 좋아했던 김금희 작가의 첫 장편을 출간된 지 2년이나 지나서야 읽게 됐다. 「너무 한낮의 연애」를 재밌게 읽어서 작가의 신춘문예 등단작품인 「너의 도큐먼트」도 찾아본 적이 있었다. 장편이 나오면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외국인 근로자로 해외에 살다보니 늦어지게 됐다. 

 

  「경애의 마음」은 우리 주변에서 본 것 같은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공상수라는 남자와 박경애라는 여자 두 사람이다. 연애소설이라면 연애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장르로 한정짓기에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주 좋은 작품이다. 

 

   상수와 경애는 모두 30대 후반으로 '반도미싱'이라는 제조업체에서 '팀장대리'와 '주임'으로 근무하는 직장 동료다. 덩치값을 못하고 늘 허둥지둥에 긴장의 공백을 주저리주저리 말로 채워버리는 상수는 잘난 아버지를 둔 덕에 회사에 낙하산으로 떨어지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인정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는 머저리같은 인물이다. 경애도 회사에서 그리 잘 나가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상수는 잘하고 싶은 열의라도 있는 반면에 경애는 파업을 시도했다가 회사에서 찍히는 바람에 이리저리 팀을 옮겨다니는 신세가 되버린다.

 

   두 사람은 '은총'이라는 인물을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데, 상수에게는 학창시절 유일했던 친구였고, 경애에게는 첫사랑이었다. 은총은 화재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고, 이 죽음은 상수와 경애 두 사람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잘난 것 하나 없이 열등감, 자격지심, 상처와 트라우마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사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의 일부분에 다름 아니다. 김금희 작가의 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읽는 사람의 마음을 만진다. 주인공인 상수와 경애뿐만 아니라, 작품에 잠깐 등장하는 아주 작은 캐릭터일지라도, 그 혹은 그녀가 처한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연민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힘은 작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따뜻하고 편견없는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고 찬찬히 뜯어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 상상하게 한다. 

 

   그 모든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렇기에 그 인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글로써 마치 우리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듯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김금희 작가는 분명히 지독한 이별을 겪은 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게 한 장면이 있었는데, 경애가 산주와의 이별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대학 시절 오래 만났던 산주는 경애를 버리고 집이 잘 사는 경애의 선배와 결혼한다. 

 

   "육년간의 연애가 끝이 나야 한다면 그런 세속의 셈법이 아니라 사랑 본질의 것, 슬프게도 그것이 갖는 한계이기를 원했다. ···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경애의 마음」 96쪽

 

   김금희 작가의 언어는 어렵지 않고, 잘난 척 으스대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문 시선에서 느껴지는 포근함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아픔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위로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본 데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재밌는 사실은, 경애와 상수가 과거에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인 체로 공통의 상처를 공유하며 그러면서도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위로를 주고받는 관계였던 반면에 직장 동료로 매일 마주하는 현재에는 서로를 퉁명스럽고 거칠게 대하면서도 차차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를 도와주고 끝내는 아껴주고 경애하는 사이가 된다는 점이다. 

 

   따뜻한 시선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캐릭터들, 옹골찬 플롯, 과거와 현재의 교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연결성, 상처의 극복에 대한 설득, 이 모든 게 350페이지 안에 봄 햇볕처럼, 여름의 나무처럼 꽉 들어차 있다. 

  

   그렇기에 독자는 세심하게 머리를 굴리거나 힘들이지 않고도 작가가 만든 세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물들어 갈 수 있고, 그 속에 오래 머물 수 있다. 김금희 작가의 작품은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는 한 줄로 마무리한 작가의 말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장편을 완성하느라 얼마나 마음의 품을 들였을지 상상되면서 눈물 날 정도로 애틋해졌다.

 

    기다리고 묵혀서 읽은 보람이 있는 「경애의 마음」을 잠시 책장에 넣어뒀다가 또 읽고, 다시 또 꺼내 읽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