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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문학

코로나 시대에 읽는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는 1940년대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전쟁의 메타포로 쓰였지만 2020년의 코로나 시대를 마치 예견한 것처럼, 현재의 전쟁같은 면면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전염병의 시작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비효율적인 행정과 자발적으로 전염병에 싸우기 위해 나서는 시민들, 전염병으로 인한 고립과 격리, 그로 인한 사람들간의 갈등과 소외, 약탈과 방화, 끊임없는 죽음과 일상이 되어버린 매장(burial).

 

   2020년의 현재를 살아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묘사에 경이로울 때가 있었다. 

 

   "그들은 그 수렁과 절정의 중간 거리에 좌초하여, 갈 바 없는 그날그날과 메마른 추억 속에 버림받은 채, 고통의 대지 속에 뿌리박기를 수락하지 않고서는 힘을 얻을 수 없는, 방황하는 망령으로, 산다기보다는 차라리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민음사 「페스트」 중 100쪽

 

   "외관적으로는 포외된 상태 속에서의 연대책임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 형태를 파괴하고 개개인을 저마다의 고독 속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혼란을 초래했다."

-민음사 「페스트」 중 225쪽

 

   "그들은 빈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페스트의 지배 속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제는 아무도 거창한 감정을 품지 못했다. ······ 자기들의 고통을 한사코 집단적인 불행과 떼어서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섞어서 생각해도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현재로 변해 버렸다.

-민음사 「페스트」 중 238~239쪽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고, 이런 비유를 할 수 있었을까?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세계대전만큼이나 처참한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사람의 삶을 속박하는 전쟁, 전염병과 같은 굴레는 결국 그 형태를 달리해 계속 존재하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수많은 물음들이 이어졌고, 작품이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될만큼 통렬하고 처참했지만 작가는 담대하게도 객관적인 서술자를 내세워 최대한 평점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작가는 이 사태를 지휘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을 내세우지 않는다. 서술자는 전염병이 창궐한 고립도시 속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보잘 것 없고 존재도 없는 영웅,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는 없는(민음사 「페스트」 184쪽)" 영웅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전염병의 시작-발전-절정-종말을 기록한 일종의 연대기로 쓰고 있는데, 이처럼 평범한 영웅을 제시함으로써 이 연대기에도 "선량한 감정, 말하자면 두드러지게 약하지도 않고 또 흥행물처럼 야비하게 선동적이지도 않은 감정으로 이루어진 기록의 성격을 부여(민음사 「페스트」 184쪽)"하고 있다. 

 

   이러한 평정심이 「페스트」가 명작으로 칭송받고 세대를 걸쳐 다시 읽히는 작품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페스트」는 고전 문학 특유의 장황한 자연 묘사도, 복잡한 인물관계도 제시하지 않는다. 「페스트」는 간결하고, 많은 인물이 등장하긴 하나 모든 인물이 각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이 캐릭터가 뚜렷하고, 모든 묘사와 서술이 잘 짜여진 각본처럼 유기적이며 효과적으로 배치돼있다. 

 

   코로나 시대를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2020년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