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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문학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중 <모래로 지은 집>과 <아치디에서>

   최은영 작가는 어렵고 불편한 말을 쓰지 않고도, 도리어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여린 말로 너와 나 사이의 불편한 상처,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의 균열과 그것을 극복해내려는 애처로운 갈급함을 표현해낸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

   아무리 둘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비참해서도, 누군가가 비열해서도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그래서."

<모래로 지은 집> 중에서

 

 

   <모래로 지은 집>은 공무, 모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의 청춘이 서로를 갈구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3년 내내 같은 온라인 동호회에 속해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서로를 동호회 게시판의 글로써만 알던 세 사람은 실제로 만나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세 사람은 대학교 1학년의 불안과 감성을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고 각자의 가족으로 인해 생긴 내밀한 상처를 말없이 보듬어주게 된다. 

   '나'는 공무와 모래가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과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가족으로 인해 크게 상처받은 공무와 달리 유복하고 행복하게만 자랐을 모래를 탓하고 알게모르게 공무의 편에 서게 된다. 

   결국 세 사람은 관계의 파열을 견디지 못하고 멀어지게 된다. 

 

   <아치디에서>도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는 젊은 남녀가 우연히 한 곳에서 만나 친해지고, 감정을 공유하고, 그러다가 다시 각자의 삶을 살게 되는 짧은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상형의 여자를 찾아서 충동적으로 고국인 브라질을 떠나 아일랜드로 날아온 랄도와 한국의 숨막히는 경쟁을 뒤로 하고 새 삶의 계획을 펼치기 위해 아일랜드로 일을 하러 온 하민은 언뜻 보기에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이다. 하지만 정해진 답 없이 타국을 부유하는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생의 문제들을 피해 도망쳤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묘하게 닮아 있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최은영 작가는 미숙하고 실속 없지만 왠지 소중해서 간직하고 싶은 청춘의 실수들, 누구나 자신이 몸으로 겪어내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나 자신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시행착오들을, 젊은 시절의 역사들을 소담하게 그려낸다.

 

   최은영 작가의 단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자기 삶이 어디로 가야 옳은지 고민하며 때로 절망하는 소중한 이들에게 「내게 무해한 사람」을 선물하고 싶은 이유다. 최은영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나직하지만 또렷하게, 유연하지만 소신있게 이야기한다.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고, 우리 모두 그렇게 실수한다고, 결국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무해했다고.